경상대학교 교수회 30년의 회고

강호신 (제13대 교수회장, 불어불문학과)

우리 대학교의 교수회는 1987년 새롭게 출발하여 올해로 30년이 되었다. 새로운 교수회의 창립은 대학의 중요 사항이 자율적이고 민주적으로 결정되기를 열망했던 모든 구성원들의 기대와 인식의 결과였다. 당시의 기본적인 사항은 다음과 같다. 대학은 학문적 진실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최고의 학문 공동체이다. 대학의 주체인 교수들로 구성되는 교수회는 대학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이며, 대학의 중요 사항을 심의 의결하기 위하여 교수회 대표로 구성되는 평의회를 둔다. 대학의 최고 관리 책임자는 총장이며, 총장의 선출은 교수 총회에서 직접 선출한다.

30년이 지난 지금 출발 당시의 기본적인 취지를 다시 회고하는 것은 아직도 그 정신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우리는 21세기 초, 인간 삶의 전방위적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합당한 대학의 성격과 기능을 재점검해야 된다. 이러한 과업에 전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교수들이다. 우리 대학 1000 여명의 교수들은 각자 자신의 고유한 전문적 영역의 지식을 심화시키고 그 내용을 교육하는 기본적 임무를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본적 활동이 제대로 수행되기 위한 여러 전제 조건들의 성립에도 교수들의 공통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대학의 성격, 기능, 운영 등에 관련되는 중요 사항들에 대한 합의적 바탕이 불안정하면 그 만큼 교수 개인들의 고유한 학문적 활동도 불안정해지는 것이며, 때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표면적으로는 평온한듯하지만 조금 주의 깊게 살펴보면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이끌려가면서 그 발전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6년부터 2년간 경험한 경상대학교 교수회장의 경험은 대학의 본질과 교수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지속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본인은 교수회의 역할을 그 구성원이 되는 교수들의 정체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수들은 각자 고유 영역의 전문적 연구와 교육에 정신적 에너지를 집중하므로 보통의 경우는 사회적 여러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자칫 대학과 교수에 대한 사회적 기대에 어긋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때로는 학문 공동체의 핵심적 사안들에 대한 무관심, 방관 등의 태도로 보일 수 있다. 교수회는 교수들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학문 공동체의 내적, 외적 문제들을 명확히 제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교수회가 중심이 되어 대학의 현안 문제를 제기하고 합당한 발전 방향을 대학의 모든 구성원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대학과 관련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여러 형태의 토론이 일상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교수회의 기본적 활동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그 동안 이러한 측면의 노력이 부족하여 한국의 대학 교수들 대부분은 그들 자신의 정체성이 명확하지 못하며, 사회적 기대에도 어긋나는 일들이 생기며, 대학의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인식도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지난 30여 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지금도 여러 논란 속에 혼란스러운 대학의 기본적 성격 규정과 관련되는 문제들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본다. 교육 관련법에 규정되어야 할 대학의 법률적 지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 국립대학도 특수 법인화할 것인가? 총장은 교수들의 직선제로 선출하는 근본적인 논리는 무엇인가? 교육부의 관리 감독을 받는 국립대학은 ‘국가의 공공시설’이라는 현재의 모호한 법적 지위는 어떤 논리적 근거로 현재의 상황에 이르렀으며, 앞으로의 개혁 방향은 무엇인가? 대학과 기업, 정부의 기본적 관계 설정에 대한 대학 구성원들의 기본적 인식과 사회적 기대를 어떻게 조정하고 제도화할 것인가? 대학의 자율적 운영과 필요한 재정의 확보, 대학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정책 수립과 감독 기능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합당한가? 대학 지원 학생들의 감소와 연관되는 대학들 간의 연합과 통합은 어떤 논의 과정을 거칠 것이며, 그 목표는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

교수들을 대표하는 각 대학의 교수회는 어렵고 복잡한 대학 내외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교수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집단적인 의사결정을 확인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대학 외부에서 만들어진 틀 속에서 대학의 문제를 생각하고, 주어진 현실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저 그런 얘기들만 난무할 것이다.

30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경상대학교의 교수로서 많은 혜택을 입은 본인은 이제 정년을 몇 년 앞두고 있다. 본인에게 주어진 학문과 교육에 관련되는 여러 의무를 부족한 능력 때문에 제대로 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후회와 반성의 시간이 많은 요즘이다. 앞으로 남은 짧은 시간이지만 최선을 다하여 그동안의 혜택에 보답하는 작은 흔적을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