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회 단상

마대영 (제15대 교수회장, 전기공학과)

필자는 경상대학교 교수 학번으로 치면 87학번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이니 필자와 우리대학 교수회는 동갑인 셈이다. 오랜 바람 끝에 교단에 선 그해 봄은 지금도 따뜻한 추억으로 생생하다. 매일 저녁 진주의 명소를 소개해 준다며 술잔을 기울였던 선배 교수님들 그리고 핑계만 있으면 집으로 찾아와 떠들다 간 학생들, 정말 그 때는 저녁이 있는 대학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대통령직선제를 요구하며 가열되던 민주화의 열기를 통해 대학에는 저녁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었다.

그해 경상대학교 교수들은 대학 최고의 의사결정기구로서의 교수협의회를 조직하면서 국내 대학의 민주화를 선도하였다. 당시에는 친목 역할에만 머물렀던 단과대학 교수모임도 단과대학 교수협의회로 재편되었었다. 필자가 속한 공과대학에서도 초대 간사였던 황규홍 교수를 주축으로 공과대학 교수협의회 규정을 제정하기 위해 열띤 토의를 벌였던 기억이 새롭다. 대학 전체 교수협의회와 동시에 결성되었던 단과대학 교수 조직은 경상대학교 교수회가 지금의 힘을 갖는데 핵심적인 기능을 해왔다. 다른 국립대학 교수회와 비교해서 경상대학교 교수회의 결집력과 소통력이 월등한 것은 단과대학 교수회의 역할 때문이다. 국립대학발전을 위한 성금모금, 각종 대정부 서명 등 국교련(국립대학교수회연합회)의 활동에서 우리대학 교수회가 언제나 가장 뛰어난 실적을 내어온 것이 실례가 된다.

우리대학은 대학 자율화의 상징인 총장 직선제와 학장직선제를 전국에서 처음 실시하였다. 언론에서는 총장 직선제가 서울대학교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사실이다. 총장 및 학장직선제는 우리대학에서 발화하여 전국 국립대학으로 확산되었으며, 이것은 필자가 경상대학교 교수인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교육부는 소위 ‘2단계 국립대학 선진화방안’이란 것을 통해 총장 및 학장직선제 폐지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바 있다. 교육부는 총장 선거에서 나타나는 일부 불미스러운 일들을 침소봉대하여 총장 직선제를 대학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흉으로 몰고 갔지만, 그것은 대학의 수장들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사로 채우려는 정권 또는 교육부 관료들의 꼼수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교수들이 총장 직선제를 지키고자 하는 이유는 자존심이나 개인적인 이득 때문이 아니라 대학에 무지한 외부의 힘으로부터 대학의 본질과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고등교육 전문가 집단인 교수로서의 책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총장선출방식이 완벽한 제도가 아님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의 변경은 권력자 몇 명의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에 의해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시간에 따라 권력은 바뀌지만 대학은 연속성을 지닌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덕스러운 일기 같은 외부의 강한 힘이 가끔 대학을 흔들 때는 선명성을 바탕으로 한 교수회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한 예로 지난번에 치룬 우리대학의 총장 선거를 들 수 있다. 지난 총장 선거의 경우, 겉모양만 달랐을 뿐 결국은 구성원들에 의한 직접 선출방식이었다. 형식을 양보하는 대신 내용을 지킨 교수회의 현명함이 자랑스럽다.

다른 대학 교수회가 우리대학 교수회를 부러워하는 것 중에는 위에서 언급한 단과대학 교수회라는 든든한 하부 조직과 함께 대학 최고의사결정기구의 역할을 견실하게 해 온 대학평의원회가 있다. 이 두 조직 덕택에 우리대학은 국교련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오고 있다. 우리대학의 자랑인 대학평의원회는 그 구성에 있어서 몇 차례의 변화가 있었지만, 대학 최고의 의사결정기구라는 지위는 출발부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본부 보직자를 포함한 모든 교수들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공유해 온 대학의 자율과 민주에 대한 확고한 신념 때문일 것이다.

경상대학교 대학평의원회는 교수, 직원, 학생이 모두 참여하는 의결기구로서 총장을 견제하고 구성원들의 뜻을 대학 정책에 반영하는데 모범적인 역할을 해 왔다. 여기에는 대학평의원회의 지위와 위상을 존중해 주었던 역대 총장들의 역할도 있었지만, 각 조직 간의 평의원 비율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수결보다는 토론과 합의라는 상호존중의 정신을 더 발휘하였던 구성원들의 도움이 컸다. 손들기에 의한 표결이 가장 손쉬운 결정 방식이지만, 자칫 힘의 횡포로 보일 수 있는 다수결에 따르는 후유증과 지지력의 결핍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대학평의원회라는 논의 절차를 한 번 더 거쳐야 하는 불편함이 실무자 입장에서 있을 수도 있으나 자율이나 민주와 같은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작은 불편함이라는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 우리대학의 귀중한 자산이자 자부심인 대학평의원회의 기능이 위축되지 않고 유지되기를 염원한다.

지나간 정권들에서는 국립대학을 시장논리로 몰고 갔으며, 지금도 왜곡된 시각으로 국립대학을 바라보는 관료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교수회의 존재가 무척이나 불편할 것이다. 마음 상한 시각 때문인지 필자의 눈에는 교수회의 기능을 약화시키려는 교육부의 의도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교수회 임원에게 지원되던 예산의 사용을 금지한 것은 직접적으로 드러난 교육부의 의도지만, 성과급적 연봉제를 도입하여 교수들을 무한경쟁으로 내 몰고자 했던 것도 교수들의 관심을 가치에서 손익으로 돌려 소시민화 시키려는 시도로 보였다. 국립대학에 대한 국회의 무지함도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고등교육법 개정법률(안)의 대학평의원회 설치의무 조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비정상적인 운영을 해 온 사립대학들을 견제하기 위한 대학평의원회 설치의무 조항을 국립대학에 적용시켜 우리대학처럼 잘 운영되고 있는 대학평의원회의 순기능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학 특히 국립대학의 존재 이유, 가치 등을 모르는 외부의 힘은 끊임없이 대학을 흔들 것이다. 물론 외부에서 대학으로 부는 바람이 모두 광풍만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대학의 부조리와 나태함을 걷어내는 선풍일 수도 있다. 교수회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그 바람의 진위를 가려내서 정부와 총장이 긴 안목으로 대학을 바라보도록 견제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교수들의 업적 경쟁이 심화되어서 그런지 우리대학도 교수회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교수회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에는 외부의 억압도 있지만 내부의 무관심이 더 크다. 우리대학 교수회를 이끌었던 전임 교수회장의 한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심정이다. 필자는 대학에 와서 몇 가지 보직을 맡았었고 교수회 회장도 지냈다. 어떤 자리에서든지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맡겨진 일을 수행했었지만, 교수회장 이었던 시절이 가장 자랑스럽다. 사심 없이 대학과 그 구성원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보람이 있었고, 대학 구성원들이 인정해 주는 권위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경상대학교 교수회는 이제 삼십 세가 되었지만 스스로 뜻을 세우는 而立으로 불리기에는 이미 耳順의 경험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 교수회는 국립대학의 정체성과 교수들의 자존을 지키는 지킴이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을 믿으며 교수회에 참여해 온 전직 및 현직 교수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이다.